크리스챤 디올 (Christian Dior)
프랑스, 1905 ~ 1957
1905년, 프랑스 서부 노르망디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크리스챤 디올은 어릴 때부터 예술적 감성을 키우며 성장했으며 또래 남자아이들과는 달리 어머니와 함께 정원에서 꽃을 가꾸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1905년, 프랑스 서부 노르망디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크리스챤 디올은 어릴 때부터 예술적 감성을 키우며 성장했으며 또래 남자아이들과는 달리 어머니와 함께 정원에서 꽃을 가꾸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유복하던 생활을 보냈던 디올에게 찾아온 아버지의 파산과 가족들의 죽음, 그리고 소유하고 있던 재산이 모두 팔려나갔지만 생활비를 마련하고자 패션드로잉을 배워 그림을 팔아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일부는 프랑스의 유명 일간지 '르 피가로'에 실렸고 이것은 곧 디올의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길로 걸어갈 수 있었던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뤼시앵 를롱의 부티크에서 일하며 파리 패션계에 이름을 알린 디올은 섬유업계의 재력가 마르셀 부싹의 투자를 받아, 파리 몽테뉴 거리 30번지에 자리한 작은 부티크는 곧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1947년 디올의 첫 오트 쿠튀르는 부드러운 곡선과 풍성한 스커트로 여성미를 극대화시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뉴 룩’이라는 이름으로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향기가 패션을 완성한다”고 믿었던 디올은 1947년, 부티크 설립과 동시에 ‘퍼퓸 크리스챤 디올’을 설립하고 향수 ‘미스 디올’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첫 패션쇼를 준비하며 조향사에게 ‘사랑의 느낌을 담은 향기’를 부탁했고 향수를 패션쇼가 진행될 부티크 전체에 뿌리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이후에도 1966년 남성용 향수 ’오 소바쥬’, 1985년 ‘쁘와종’, 1999년 ‘쟈도르’가 출시되었습니다.
루즈 디올은 드레스 소재를 립스틱에 그대로 옮겨 놓은 8개의 컬러로 만든 것으로, 모든 여성에게는 옷처럼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컬러가 있다는 점에서 착안해 만들어졌습니다.
그 후 자신의 이름으로 된 패션 브랜드를 론칭함과 동시에 ‘라이선스 개념’을 도입했고 1957년, 52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크리스챤 디올의 명성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 뉴 룩(NEW LOOK) "
대담한 작품들
부드러운 실루엣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함
이국적인 화려함
슬림한 스키니진 열풍
일본에서 영감을 얻은 간결함
페미니스트적 시각
트렌디한 럭셔리 패션
1947년 미스 디올의 탄생 이후, 디올은 세계 최고의 조향사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디올의 퍼퓨머 크리에이터인 프랑소와 드마쉬와 아름답고 변함없는 디올의 시그니쳐 향수를 선보입니다.